서론


챕터

  • 동기
  • 공간 구성
  • 목재 선택 (두께, 하드 우드와 소프트 우드, 유절과 무절)
  • 공방 탐색 (통수)
  • 제작
  • 나무 마감재 선택 (바니쉬, 오일)
  • 설치와 보완 (난반사 책상등, 추가 빛 분산층)
  • 원예 (NASA 선정 공기정화 식물, 관엽식물과 토분)
  • 책장 가림막
  • 현상태

1. 동기

먼저 벙커 침대를 생각하게 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방이 좁았다. 2016년경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우리 집이 동작구에서 금천구로 이사를 했다. 그러면서 방이 많이 좁아졌는데, 좁음에도 개의치 않았던 건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전역 후 이틀 뒤 네덜란드로 출국했고, 그 후로 5년 동안 여름방학 때 잠깐 머문 것이 전부였다. 나의 짐들이 대부분 해외에 있었고,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친구들을 만난다거나, 타투를 배우러 간다거나, 건축 구경을 다닌다거나, 병원을 돌아다니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좁음에 불평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귀국 정리 한다고 미술용품이나 옷들을 많이 처분하였으나 6년이라는 세월 동안 축적된 짐의 양을 무시할 수 없었다. 욱여넣어 보았으나 무리가 컸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Cold fact로 발 디딜 틈이 일 제곱미터 미만이었다. 한마디로 공간을 넓힐 필요가 있었다. 물론 기성품으로도 충분히 공간을 넓힐 수도 있었겠지만 1cm라도 더 확보할 수 있도록 맞춤 설계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는데 나무 턱걸이 봉을 붙박이로 구조에 추가하고 싶었다.

두 번째 이유로는 나무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었다. 수종 제 각기의 다른 형상과 특성, 물성을 이해하고 싶었다. 물론 글로도 이를 배울 수 있지만, 나의 경우 상상력이 부족한 탓에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만지고, 두들겨 보는 것이 이해가 더 빠르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물성에 있어서는 손으로 습득한 지식이 더 진실하다고 믿는다. 남의 지식이 아닌 나의 지식이 된다) 그리고 재료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제작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갖추고 싶었다. 시중에서 목재가 어떤 식으로 소매가 이루어지고, 어떤 규격으로 유통되며, 시세는 어떻게 되며 어떤 공구와 어떤 방법으로 목재를 가공하고 결구하고 마감하는지, 과정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하고 싶었다.

설명을 거창하게 했지만, 결국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언가를 만들 때 어떤 두께의 나무를 쓰고, 어떻게 자르고, 어떻게 연결하고, 보강대가 필요한지 필요 없는지, 못을 박아야 하는지 박을 필요가 없는지, 박아야 한다면 어디에 몇 번 박을 것인지를 결정할 힘을 기르고 싶었다. 이러한 작은 부분들의 세심한 선택이 결국에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고, 그 전체가 설득력 있는 하나를 이룬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김정현은 비좁은 방에서 숨통을 트기 위해, 나무와 친해지기 위해 (아, 그리고 가성비를 챙기기 위해) 직접 벙커 침대를 디자인하고 만들기로 다짐한다.


2. 공간구성

초기 요구사항

  • 벙커침대 (책상 위에 침대가 올라간 형태)
  • 모든 것은 나무로
  • 책상의 깊이는 최소 100cm, 20cm는 책상 선반에 할애
  • 2단 옷장
  • 턱걸이봉 붙박이로 다른 가구에 일체화 될 것

설계를 시작했을 때 우선으로 생각한 것이 침대의 위치였다.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기에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침대의 위치가 창문의 위치, 문의 위치에 따라 먼저 결정되고, 책상, 선반, 옷장 등의 다른 가구들은 칩에 위치에 따라 부차적으로 결정되었다. 벙커 침대의 가장 일반적인 — 책상(하)+침대(상) — 의 형태 말고도 침대(하)+책상(상), 침대+옷장, 침대+선반, 책장+옷장, 침대+책장 등의 형태를 고려해 보았으나 역시나 침대+책상의 조합은 자연 선택된 것인가? 이보다 더 공간 효율적인 조합을 발견하지 못했다. 적어도 나에게 주어진 공간에서는 (하지만 위와 같은 다양한 조합을 상상해 보는 것은, 미래의 공간설계에 좋은 양분이 될 것이다).

북쪽에 벙커 침대를 두기에는 창문 사용이 번거롭고 창틀과 벙커의 선이 따로 놀아 미관이 번잡해진다. 아싸리 창문 폭이 책상 폭과 같았더라면 괜찮았을 수도 있겠지만 애매하게 더 길었다. 그렇다고 동쪽에 위치시키기에는 입구에서 진입이 부자연스럽고 밖에서 봤을 때 기둥이 창문을 가린다. 결국에는 남쪽에 책상을 두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문과 서쪽벽 사이에 1.5m 넓이의 책상 폭도 넉넉했고, 침대 폭1.5m(1.2m 침대+0.3 선반)의 높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뒤쪽으로도 2m 가까이 넣은 공간이 있다. 동쪽 벽에는 옷장을 두고 진입로를 따라서 ㄱ자로 책장을 만들 것을 계획했다. 추가로 수납공간이 생기면서 시선도 적절히 차단하고 책상 뒤쪽으로 운동도 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대로 마무리되나 싶었다. 참외 놔두러 방에 들린 어무니가 라이노 3D 모델 보고 하신 한 마디.

‘너무 어둡지 않겠냐? 차라리 저쪽에다 침대를 놔두지.’

‘아니 그러면 기둥 방향이.. 어?!’

엄마의 말 한마디가 변곡점이 되었다. 이는 이세돌의 78수와 같은 것이었다. 침대와 책상의 폭을 정렬하면서 1.5m보다 넓은 2m 폭의 아주 여유 있는 책상이 생겼고, 예상치 못하게 책상과 침대의 깊이가 같아짐으로써 침대에 머리를 박는 위험을 현저히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동생은 이미 이케아 벙커 침대를 쓰고 있었고 침대 하단에 머리를 계속 박아 모서리에 스펀지까지 설치했다) 침대도 생각해보면 싱글 사이즈로 충분하고, 책상과 침대가 정렬되면서 조형적으로도 간소해졌고, 제작하기도 쉬워지고, 구조적으로도 안정적이며, 공간도 더 넓어졌다. 김정현은 책상 길이와 벽 길이를 딱 맞게 하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조형에 집착하다가 공간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래서 언제나 차별 없이 모두에게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했고, 나는 부족한 사람이고, 항상 누군가와 같이 일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했다. 물론 이렇게 된다면 기둥의 방향 때문에 턱걸이 봉을 넣을 수 없다. 하지만 실보다 득이 크기에, 어쩔 수 없이 턱걸이 봉은 따로 빠져야 했다.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격인 것이 아쉽지만 침대와 책상의 폭을 맞춰 서쪽벽에 붙이는 걸로 가닥이 잡히고, 자연스럽게 옷 선반이 동쪽 벽을 가져가게 되었고 이제부터는 북쪽에 책장 사다리 싸움이 되었다. 모서리를 어떻게 야무지게 쓸 것인가. 처음에는 모서리 부분에 계단을 만들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했다. 사다리를 생각해 보았으나 아침에 일어나서 맘 편히 내려올 자신이 없었다. 결국 책장 겸 계단이 되는 건데, 이거다 하는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로사에 집 디자인할 때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계단의 두번째 단을 길게 U자로 돌려서 벤치의 기능을 겸하게 하는 것이다. 버리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북쪽 창문 앞 공간이, 생각해보니 계단의 첫 단 겸 서재가 될 수 있었다. 책상에서 작업하다가 잠깐 쉬고 싶을 때 앉아도 되고, 햇빛을 등지고 독서를 해도 되고, 옷 입을 때 걸터앉을 수 있는, 책상과 침대에 추가로 제3의 성격을 갖는 공간이 나오는 것이다!!! (이 공간은 이윽고 김정현의 최애 공간이 된다)

아마 이쯤에서 정확한 치수를 토대로 설계하기 시작했다. 사용할 목재와 규격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자세히 하겠다). 20세기 세계 제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미국은 3×2, 4×2, 8×4피트 등의 표준 규격으로 판재를 유통했고, 그것이 사실상 국제 표준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8×4파트 사이즈였고, 이것을 mm로 환산하면 2440x1220mm가 된다. 두께는 12T, 18T, 24T, 30T 등이 많이 사용되는데, 나는 하중의 부담이 적은 부분은 18T로, 기둥으로서 구조체의 역활을 하는 부분은 30T를 쓰기로 했다 (T는 mm로 간주하면 된다). 여기서 내가 한 설계로 8×4 판재 몇 판을 사면 되는지 계산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수량이 나와서 긴급 설계 변경이 거행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 비용 절감을 위해 피치 못해 재료 사용을 줄일 곳을 찾다가,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디자인 수정이 이루어졌다. 가장 큰 디자인 변화를 가져온 부분은 수납장과 침대 난간이었다. 세세히 칸을 나눴던 수납장은 구조적으로 필요한 부분만 남겨 칸을 나눴다. 용처를 굳게 정의하기보다는 최소한으로 칸을 나누어 수납의 유연함을 부여하고 동시에 제작의 수고를 덜었다. 나중에 설치 완료 후 옷가지를 정리하다 보니, 칸을 덜 나누길 잘했다. 난간은 원래 2000×350의 깡 판으로 만들려 했다. 이는 옷장을 만들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다. 하지만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김정현은 직선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간으로 그림 그려서 안 될게 뭐야?’

그렇게 짧은 선 두 개와 긴 선 하나의 다소 추상적인 배치로 난간이 재탄생하였다. 이전 깡 판때기 난간보다 구조가 가볍고 솔직하다.

그렇게 설계는 끝났지만 제작 과정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자꾸 떠올라 조금씩 수정했다. 그중 하나가 벙커 침대 왼쪽 기둥 상인방(lintel) 뒤쪽으로 자석을 삽입해 앞면에 각종 문구를 붙여놓는 것이다. 이는 제작 쳅터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2. 목재 선택

이실직고하자면 더 이상 못 쓰겠다. 그렇다. 첫 장이 끝나자마자 잠정 보류다. 할 말은 많은데 시간이 많이 흘렀고 부분부분 기억이 옅어지는 바람에 의욕이 예전만 못하다. 한 편의 자서전 쓸 기세로 서론을 휘갈겼지만, 참으로 씁쓸한 맺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원예 챕터는 현재진행형이므로 조만간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3. 공방 탐색


4. 제작


5. 나무 마감재


6. 설치와 보완 (난반사 책상 등과 추가 빛 분산 층)


7. 원예 (NASA 선정 공기 정화 식물, 관엽식물과 토분)


8. 선반 가림막


9. 현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