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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댁에 에어컨을 놔드리기 위해 기사님이 오셨다. 설치하는 도중 할머니께서 잠시 우리 집에 머물렀다. 나는 가산디지털단지 근처에서 친구를 만나고 집에 들어오는 길이었다. 동생은 아침 일찍 친구를 만나고 돌아와서 잘 준비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만 집에 있는 풍경은 처음이었다. 집 내부를 새로운 잡화와 식물을 잔뜩 들여 대대적으로 개편한 후 할머니께서 처음으로 방문한 것이기에 나는 새로운 식물과 넓어진 주방을 자랑했다. 할머니께서는 손주의 자랑을 들어주기 위해 일어서기조차 버거운 육신을 이끌고 한 발짝 한 발짝 씩 가구에 기대에 천천히 주방으로 걸어오셨다. 소파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몇차례 실패 후 나의 도움으로 일어나셨다. 부엌을 보신 할머니는 나의 가사 실력을 칭찬하시고는 언제나 그랬듯 ‘청춘사업’에 대한 재촉으로 말을 정리하셨다. 부엌을 보고 거실로 돌아가는 길도 20cm도 안 되는 보폭으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돌아가셨다.

“젊었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할머니 움직이시는 데 많이 불편하세요?”

“그럼… 힘이 없어서 집에서도 자꾸 넘어져.”

“아이고 조심해야 해요 할머니… 운동을 조금 해보면 괜찮아질 수 도 있지 않을까요?”

“이제는 근육이 없어서 안 돼.”

“병원 한번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가봤는데, 이젠 다 소용없어. 등도 굽고 무릎에 근육이 없어서 이젠 안 돼.”

“….”

할머니는 내 무릎에 손을 얹으시며 깊은 정적을 깨셨다.

”내가 이렇게 됐다.“

나는 이 말이 왜 그렇게 슬프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망가진 무릎이 그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잃어버린 거동의 자유를 초연히 받아들는 태도였을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고도 담담히 순응하신 듯한 어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너는 다른 건 다 먹어도 나이는 먹지 말아라.”

“노력해 볼게요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