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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궁금해져서 동서양을 나누는 다양한 기준에 대해 알아봤다. 그러다 동경과 서경을 나누는 본초 자오선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이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제 표준시 UTC(Coordinated Universal Time)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동, 서로 15도씩 멀어질수록 1시간이 느려지거나 빨라지는 것이다. 동경 124~132도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표준경도 135도로 표준시보다 9시간 빠른 UTC+9시가 된다. 김정현은 생각했다. ‘아니 ㅅㅂ 왜 너네가 기준이야. 내가 기준하고 너네가 UTC-9 하면 안 돼?’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선 국제 표준시가 정해진 1884년 국제 정세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가 필요했다.

위도는 자전축에 수직이 되는 선이며, 위도 0도가 되는 기준선을 적도 선이라고 한다. 적도 선으로부터 남북으로 떨어져 있는 거리에 따라 위도 값이 정해진다. ‘앞’이 있다면 ‘뒤’가 있고, ‘아래’가 있다면 ‘위’가 있고, ‘가로’가 있다면 ‘세로’가 있다. 지구의 가로선으로 위도가 있다면, 세로선으로는 경도가 있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자전축이라는 법관에게 위도 중심선 설정을 위탁할 수 있었다. 정치적 개입이 없는, 순수한 과학의 선, 차가운 선이다. 하지만 경도의 기준선인 자오선은 어찌하나? 오늘도 지구는 돌고 남중과 정오는 모두에게 평등하기에 이 또한 자전축 법관에게 책임을 이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수많은 경도선 중에 하나의 중심선을 정하는 것은, 따뜻한 우리,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선거에는 열을 올리는 우리기에, 자오선은 뜨겁다.

17세기 해양 활동이 활발했던 영국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향해 중 선박의 경도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워 난파 사고가 잦았다. 위성 기반 항법 시스템 (GPS) 로 정확한 위치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현재와는 달리 당시에는 추측 항법 (Dead Reckoning)이라는 항법으로 위치를 파악했다. 기준 위치에서 이동한 시간, 속도, 방향을 계산해서 현 위치를 파악하는 것인데 이는 바람, 해류, 지형 등의 비일관적인 요인들로 인해 의해 오차가 매우 컸다. 실례로 1707년 영국군의 사령관인 클라우데슬리 쇼발 (Sir Cloudesley Shovell)이 지휘하는 함대가 해양작전 수행 후 복귀하는 길에 경도 계산에 오류가 있어 4척이 실리 제도(Isles of Scilly)에 충돌해 1400~2000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수많은 항법이 제안되었으나, 모두 결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경도 찾기 (Discovering longitude)’ 을 불가능 한 일을 하는 것을 일컬어 말하기도 했다. 잦은 해양 사고에 심려한 앤 여왕은 1714년 경도상 (Longitude Prize) 공표하여 경도의 위치를 실용적이고 정확히 계산할 방법을 찾는 이에게 20000파운드의 상금 지급을 약속한다.

추측 항법 외에도 다양한 경도 측정법이 사용되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천문 항법’ 이다. 천체관측으로 위도를 찾는 것은 비교적 간단했다. 태양의 고도와 별의 위치를 통해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경도는 달랐다. 경도를 파악하기 위해선 태양이 전날보다 얼마나 일찍, 혹은 늦게 뜨는지를 알아야 한다. 출발지에서 동쪽으로 이동했을 때 태양이 어제보다 한 시간 일찍 뜬다면 15도 이동한 것이 된다. (1/24h x 360°). 따라서 정확한 경도 파악에 있어서 정확한 시간 파악은 필수적이었다. 왜냐하면 시간이 1분만 틀려도, 0.25도가 틀어지게 되고, 이는 무려 27.8km가 된다. (44710km x{(1/24h x 360°)x1/60m}). 17세기에도 시계는 있었으나 진자나 스프링 기반의 추시계다. 이는 배의 요동, 온습도에 의해 오차 발생이 쉬웠기에 사용할 수 없었다.

시계공이었던 존 해리스는 경도 상 소식을 듣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 천문항법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는, 해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배의 요동과 습도, 온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차범위를 현저히 줄인 태엽 시계를 발명한다. (그는 이를 크로노미터라고 불고, 그는 29년 동안 4가지 버전 H1, H2, H3, 그리고 H4를 발표한다) 존 해리스의 크로노미터 최종판 ‘H4’를 통해, 인류의 난제, 경도 찾기 문제가 해결되었고, 안전한 향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집단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발명이 주를 이루는 오늘날과 대조되어, 일개 골방 속 개인의 발명이 인류의 진보를 이루는 것이, 참으로 낭만 있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당시에 영국뿐만 아니라 각 나라들은 자체적인 자오선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 국제무역이 활발했던 식민주의 국가들의 자오선이 다른 국가들에 특히나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시간이 한 지구에 공존했던 것이다. 국가간 교류와 협력이 더욱 긴밀해지면서 편의를 위해 국제 시간 표준화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지만, 모두가 반장이 하고 싶었었기에, 상당 기간 복수반장제가 유지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선거를 미룰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뜨거워진 머리 식히고 1884년 국제 자오선 회의(International Meridian Conference)를 개최하였다. 18세기 해양 강국이었던 영국은, 크로노미터를 발명과 더불어, 그리치니 천문대에서 추측항법을 위한 정확한 시간과 별의 위치정보를 제공했다. 이러한 영국의 해양학적 공로 앞에서 다른 참여국들은 합죽이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리니치 천문대가 경도 0도의 기준이 되었다. 그리니치 평균시 (GMT, Greenwich Mean Time)가 세계 표준시가 된 것이다. (프랑스가 1983까지 본초 자오선 인정 안 하고 파리 자오선으로 버틴 건 안 비밀) 세계는 영국의 자정에서 새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UTC-0이 아닌 UTC-9에 사는 이유다. (원자시계의 발명으로 1972년 GMT에서 UTC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본초 자오선을 기준으로 한다.)

우리는 본초 자오선을 통해 한 국가의 국제무대 에서의 위엄은, 단순 자본력, 국방력 뿐만이 아니라 지적 역량이라는 것을 재확인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