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글에 달린 날짜는 글이 완성된 날짜가 아닌 글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날짜다. 그 이유를 이곳에 간략히 적어보고자 한다.
많은 분야의 창작물들이 그렇듯 상상, 기획, 구상 등의 지적 활동이 전체 제작 시간에 10%를 차지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활동이 90%를 차지한다. 나의 글 또한 그러하다. 글의 내용과 전체적인 틀은 삽시간에 만들어지고 (주로 아침에 호암산에서 불영암길 등산할 때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시간은 단어 선택과 흐름이 매끄럽도록 문장을 정렬하는 등의 기술적인 보정이다. 물론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피어나기도 하고 생각이 더 뚜렷하게 정리되기도 하기에 이를 순전히 기술로만 간주해서는 안 되지만, 구상의 단계가 구현의 단계보다 머가리 CPU 프로세스의 코어 할당률이 현저히 높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나에게는 짱구 굴러간 날짜가 노가다한 날보다 더 의미있다.
그렇다고 최초 작성일이 최초 생각일은 아니다. 우선 내가 게을러서 글 쓰는 것을 자주 미루기도 하고 ‘생각 서바이벌’이라는 일차 거름망이 필요해서다.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다가 탈락하지 않고 자꾸 나를 자극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선택된, 뉴런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무체의 생각이 사람들에 의해 이해되고 혹은 더 나아가 설득할 수 있는, 현실 세계에서 영향력을 갖는 문자로서 실체를 갖게 된다.
부유하는 생각의 분자들이 메모장 속 나만의 언어로 응축되고, 그것들이 어법에 맞게 다듬어지면서 통용어로 응고된다.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분자들이 나의 선택과 의지를 통해 지각 가능한 상태로 전이하는 최초 상변화 단계, ‘응축’의 단계를 나는 의미 있게 생각한다. 이 때문에 나의 글에 달린 날짜는 아이폰 메모 앱 기준 편집일이 아닌 생성일이다.
(생각이 문자가 되는 과정을 상변화에 비유 지려따)
(자아도취를 버젓이 써갈긴 호방함도 지려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