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가는 날인데 사실 오늘도 일어나기 어려웠다. 번개로 술을 늦게까지 마시고 집에 돌아와 잠에 1시쯤에야 들었다. 알람에 깼는데 너무 일어나기 싫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수업도 늦잠으로 결석을 해버려서 오늘은 빠질 수 없었다. 납덩이같은 몸을 이끌고 부랴부랴 옷 입고 출발. 조금 늦어서 레일 뒤쪽에 섰다 (레일 뒤쪽이 뭔가 더 여유롭고 돌아올 때 반대편에 아무도 없어서, 요즘은 뒤에 서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첫 세트를 시작하는데 맙소사, 저번 주에 접영 킥을 배운 모양이다. 접영 킥은 두 발을 모아 동시에 밑으로 차면서 물을 밀고 나아가는 동작이다. 고래가 헤엄치는 모습과 유사하다. 처음 해봤지만, 그냥 바닥으로 팡팡 차면 돼서 다행히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다. 나름 쉽다고 생각했는데, 안전거리가 좀 많이 확보됐다. 다음으로 한손접영을 배웠다. 접영은 무조건 양손으로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유형의 팔 동작을 차용해서 한 팔씩 따로 젓는 접영이 있더라. 자유영과 다른 점은, 팔을 물 속으로 저을 때 어깨에서 부터 웨이브를 주고, 그 웨이브를 그대로 발까지 흘려 접영 킥으로 마무리한다. 우선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고, 레일을 돌았다. 따라 해 봤으나 고양이가 놀다 버린 실뭉치처럼 몸이 꼬여버렸다. 상체에서 팔, 몸통, 다리가 각자도생했고, 웨이브가 부드럽게 만들어지지 않아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급한 마음에 헐레벌떡 발을 차다가 점점 가라앉고, 호흡을 위해 수면 밖으로 입을 꺼내도 호흡할 시간이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선생님이 내 자세를 보시더니, 팔을 저으면서 한번,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한번 발을 차야 한다고 교정해줬다. 발차기 타이밍을 대충 알고 나니 얼추 태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호흡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고 점점 패턴이 꼬여 오래 지속할 수 없었다. 깔끔한 웨이브를 만드는 것과 발차기까지의 연계가 관건이다. 그래도 하다 보니 점점 나아지긴 했다. 다음은 양팔을 촥 펼치는 기본 접영을 배웠는데, 선생님은 어차피 잘 안 될 거니 시도에 의의를 두라고 했다. 나는 줄 뒤에 섰기에 다른 사람들이 시도하는 걸 먼저 볼 수 있었다. 진풍경이 연출됐다. 한팔접영도 안 되는 와중에 양팔 접영을 시키니, 불 보듯 뻔했다. 나비처럼 우아하게 쫙 펴진 팔은 온데간데없고, 다들 푸다닥거리는 닭둘기가 무색하게 팔을 잔뜩 옹송그려 헤엄쳤다. 닭둘기 뿐만 아니라 족제비, 날다람쥐, 고릴라, 딱따구리, 지네 등 각양각색의 생명체가 저만의 방식으로 물과 사투하는 ‘삶의 현장’이었다. 사실 이 순간이 내가 수영할 때 가장 소중히 여기는 순간이고, 수영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나이 성별 직업을 떠나, 처음 배우는 동작을 해볼 때 모두가 자신 원초의 상태로 돌아가는 듯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물을 먹을지언정, 저렇게 옹졸한 접영은 하지 않을 테야.‘ 그렇게 나는 코로 물을 엄청 마셨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코가 찡하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끝날 시간이 되어 선생님과 다 같이 화이팅을 외치며 수업을 마쳤다. 수업은 50분에 끝나는데, 55분까지 자유 수영이 가능하다. 새로운 영법을 배웠기에 남아서 몇 세트 더 돌기로 한다. 웨이브에 집중했고, ’나는 인어공주다, 왕자님을 만나러 간다’라고 생각하니, 어렵지 않게 완려한 웨이브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풀에서 나와 샤워실로 향하는데, 내 앞에 있던 사람이 나를 보고 말을 했다.
“빨리 느는 거 같아요”
“엇 정말요?!”
‘끄덕’
이게 뭐라고 씨발 하루 종일 싱글벙글했다. 내 마음에 꽃비가 내린 것이다. 물론 평소에도 내가 조금 빨리 배운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루에 10분씩 했던 턱걸이 덕에 남들보다 물을 더 쉽게 저을 수 있었고, 10분씩 스트레칭한 덕에 남들보다 더 유연하게 수영할 수 있었고, 몸이 말라서 남들보다 조금 더 잘 뜰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직접적인 칭찬을 가하지는 않았고, 그냥 스스로 얼핏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려 같은 반 수강생도 아니고 상급반 수강생이 나에게 칭찬을 한 것이다! 말 한 번 섞어본 적 없는 상급반 수강생이! 그것도 레일 선두에 서는 에이스가!
다시 정리해 보자면 상급반 에이스는 김정현의 행보를 레일 넘어 예의주시하고 있었고, 일순간에 일취월장하는 진귀한 광경에 칭찬하지 않고는 못 배겼던 거다. 나는 함께 아침을 맞는 초보반 동급생에게도 칭찬이 인색한데, 하물며 남의 반에 있는 사람에게는,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렇지만 그는 해냈다. 그리고 나는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말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한 에너지가 1kcal도 안 될 미량의 에너지라면, 이거야말로 극강의 가성비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모두 칭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