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한국인은 흠집을 싫어한다. 에어팟 케이스의 케이스. 인덕션 상판의 상판. 보관함의 보관함의 보관함. 옷의 옷의 옷. 사람들은 사람의 케이스에도 많은 돈을 투자한다(안티에이징). 모든 생명, 물건은 각자의 주기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흠집, 노화는 그 주기 중 얼마만큼 왔는지를 보여주는 진행 표시줄 같은 거다. 얼마나 짙은 농도로 세월이 서려있는 지를 그린다. 야동 다운받을 때는 그토록 뚫어져라 진행 표시줄을 쳐다보면서 우리 스스로와 우리의 물건은 어떻게 해서든 그 표시줄을 숨기려 한다. 그러다 보니 주객전도가 발생하여 나를 모셔야 할 물건들을 내가 모시게 되었다. 우리는 조금 더 세월에 솔직할 수 없을까? 흠집을 꼭 흠으로 봐야 하는 걸까? 물론 기능 결함이 생긴다면 안 되겠지만, 미관의 바뀜 정도라면 조금은 더 너그러워져도 괜찮지 않을까? ‘흠집을 새긴다’가 아닌 ‘역사를 새긴다.’ 정도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흠, 상처, 낡음, 가난 대신 정취, 완숙, 연륜, 기억 등의 따뜻한 단어들을 열거해 본다면 우리는 조금은 더 세월과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나는 말고 너만 난 케이스에 케이스에 케이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