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친구들이 있다. 각자의 세상을 살며 차츰차츰 다른 생각을, 말씨를, 태도를, 시선을, 가치를, 바이브를 가지게 된 친구들. 다름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만 즐겁지 않은 다름을 가지게 된 친구들. 친구라는 관계의 유일한 명분이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뿐이 되어버린 친구들. 코드가 잘 맞고 같이 있는 것이 즐거워서 친구가 아닌, 친구였기에 친구인 친구들. 간만의 약속이 축제가 아닌 숙제가 되어버린 친구들.
최근까지 나의 입장은 강경했다. 나와 다르고 잘 맞지 않더라도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사회적 근육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생각이 고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름이 아닌 틀림을 보더라도 반면교사에게 개인 과외비를 지불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선 속에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잘 모르겠다. 모든 목표가 외부의 시선을 만족하기 위함인 사람들. 옳아서 옳은 것이 아니라 옳다기에 옳고, 글러서 그른 것이 아닌 그르다기에 그른 사람들. 시선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남의 시선 속에 사는 사람들 주변에 있는 것과 온전히 ‘나’를 살아가는 사람 주변에 있을 때의 차이는 극명하다. 나를 살아가는 사람들 옆에 있을 때는 마음이 편하고 나 또한 더 나다워진다. 반대로 시선 속에 사는 사람들은 주변에 있으면 신경이 곤두서고 나를 잃어간다. 시속사는 어쩌면 멀리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요즘 한다. 사회적 근육 유지를 위한 지불 비용이 너무 크다. 이런 부류는 타산지석으로 삼기에도 수지타산이 안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