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 대로 살아왔다. 여건 형편 저편에 두고 일편 단 심 멋. 그림쟁이영어쟁이소리쟁이영상쟁이공간쟁이문자쟁이가 멋졌고 나도 멋지고 싶었기에 열심히 좇았다. 대학교 졸업할 무렵 중차대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거슨 바로 멋을 신경 쓰지 않는 멋이 멋지기 시작한 것. 남들이 아무리 너 싫어 너 나빠 너 바보 너 노멋 하더라도 ‘응 너 해’ 박고 직진하는 사람들이 세상 멋지기 시작했다. 본 감상은 대단히 가공스럽고 파괴적이다. 왜냐하면 다른 멋들은 꼴뚜기 뛰는 격으로 흉내라도 내볼 수 있다면, 멋이 필요 없는 멋은 노력 여하의 문제가 아니라 천부적인 재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나 싫어하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나인데 무서운 걸 안 무서워하라는 건 ’고프지 마, 졸리지 마, 꼴리지 마‘ 등의 본능을 거부하라는 분부와 진배없다. 멋에 죽고 멋에 사는 놈이, 진짜 멋인 ‘멋이 (필요) 없는 멋’을 못멋한다는 데에 가슴이 멋멋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여기서 자멸의 길을 걷는다. 다음과 같은 추악한 변명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유복하게 자랐어. 잃을 게 없어 봐야 시선 따위는 사치가 될 터인데.“ 진짜 개멋없다… .. . .. …에이 싯팔 별 수 있나! 너울에 어기여차 노 한 번 더 젓는 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