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웃음

여지껏 여유롭게 구직을 미뤄온 나이지만, 막상 첫 지원 메일을 보내니 조바심이 배를 뚫고 튀어나왔다. 지원 메일을 잔뜩 보낸 지 5일 차, 몇몇 채용 안 한다는 메일을 제외하고는 답이 없다. 답이 없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여자친구로부터 데이트 퇴짜를 맞은 이주승은 김정현을 불렀고, 김정현은 떨어진 콩고물을 받았다. 맥주를 들이켜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어느 정도 웃기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다.

“이실직고하자면, ‘겨울 연휴라서 아직 메일을 못 봤을 거야,‘ 라고 혼자 위로했어“

웃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로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스근하게 삽입되는 농담에 대응하기 위한 웃음이다. 대화의 매끄러운 전개를 위해, 안정적인 핑퐁을 위해 구사하는 의례적인 배려다. 물론 그 웃음이 아주 가짜는 아니고 나름의 웃김이 있기야 하겠다만, 그 웃김만으로는 미소를 짓기에 무리가 있어 의식적으로 안면 근육에 힘을 보탠다. 나이 들수록 더 자주 마주하게 되는 그 웃음 말이다. 나는 내 드립으로, 딱 그 정도의 웃음을 기대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ㅏ하하하하하ㅏ하핳하”

게다가 이 웃음은 상당 시간 지속됐다. 웃음을 들으면 어느 정도 그 웃음의 종류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 해당 웃음은 상술한 첫 번째 웃음이 아니었다. 대화 참여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웃음이 아니라, 일말의 의식적인 근육 사용도 없는, 순도 100% 웃김에서 비롯한 자연 웃음이었다. 첫 번째 웃음과는 반대로, 주체할 수 없는 과한 웃김에 광대에 통증이 유발돼, 오히려 슬픈 생각을 꺼내 웃음을 저지하기도 한다. 좀체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웃음이 폭발해, 진화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의식 첨가물 없는 순도 100% 웃음은 전후 맥락 없이 웃음소리만 들어도 웃기다. 이 웃음은 경험할 일이 많지 않고 나이가 들수록 점점 멸종해간다. 이주승은 나의 유머 반 진심 반 드립으로 멸종되어 가는 웃음을 복구했다. 나는 드립이 먹혔다는 만족도 잠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자아의 크기(소설)

“진짜 이건 아닌데.. 나도 자존심이 있지 여기까지 내려간다고? 솔직히 돈 좀 써서 도메인에서 wix는 좀 빼자. 후 진짜 인심 썼다, 너 오늘 아주 계탔다!” 넓은 아량을 베풀어 지원했으나 묵묵부답. 하도 메일이 안 오길래, 메일 서버의 오류인가? 점검차에 그냥 아무 데나 지원했다. 뭐 합격 문자 받더라도 거절하면 되니까. 그리고 바로 클릭만 하면 보낼 수 있게 미리 거절 메일을 써놨다. 그 메일은 아직까지도 임시 저장함에 있다. ”오케이, 감 잡았으. 뭘 원하는 지 알겠다고. 돈 안 받을 테니 일만 시켜줘라.“ 역시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프리즈커상 수여식의 착장을 고민했던 나의 자아 크기는, 비로소 제 크기를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