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가 합법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절실히 느꼈다. 코로나를 5번 걸리고 B형 독감도 걸려봤지만, 이렇게 죽을 것 같은, 아니 죽고 싶은 바이러스는 처음이었다. 가인박명이라더니, 정말이구나 했다. 12꼬북, 5+설사라는 미증유의 기록을 이룩했다.
사건은 이렇다. 김대희와 망원에서 계엄과 굴보쌈을 안주 삼아 진로 골드를 1병씩 마셨다. 굴이 쫄깃쫄깃 맛있길래 한 번에 두 개씩 집어먹었다. 다행히 김대희가 눈치채지 못 했다. 2차는 횟집. 제철 대방어에 취해 또 각 1병. 그리고 집 복귀. 다음 날 아침 몸이 썩 개운치는 않았지만 숙취가 그렇게 심하지 않아 아침 수영도 갔다. 아침으로 오트밀에 사과를 먹었으나 장에 불편감도 없었다. 밥 먹는 게 귀찮기도 하고 빈속을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점심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을 먹었다. 일찍 자려는데 난데없이 속이 울렁거렸다. 화장실로 달려가 발사. 주량이 1병 반인 나에게 2병은 역시 무리인가 보다 생각했고, 낮에 안 먹어서 괜찮다가 저녁에 밥을 먹으니 위에 자극이 와 잠복하던 숙취가 올라온 것으로 생각했다. 간만에 느끼는 구토의 고통에 몸부림쳤고, 급기야 김대희에게 금주 선언을 담은 카톡을 보냈다. 김대희는 그 정도 숙취는 노로바이러스 아니냐고 의심한다. ‘노로바이러스..?’ 검색을 해 보았고 보통 겨울철에 굴을 먹다가 잘 걸리고, 12~48시간의 잠복기가 있고 구토, 설사, 발열, 두통, 근육통의 고통종합선물세트를 준단다. 맙소사 딱 나잖아.
보통 숙취로 구토를 하게 되면 회차를 거듭하며 토사물의 색깔이 점점 바뀐다. 1~3회차에는 건더기를 포함한 걸쭉한 토가 나온다. 감산 혼합의 원리로 색깔은 주로 어두운 갈색을 띤다. 2~4회차에는 거기서 더 옅어진 연갈색, 연분홍색을 마주한다. 이제 얼추 내용물은 다 나왔고 4~5 회차에는 1~5회차 토를 하고 마신 물이 나온다. 그 때문에 색깔은 맑은 투명색. 5~7회차는 노란색 쓸개즙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 쓸개는 밀도가 높은지 물에 잘 섞이지 않고 물 밑으로 가라앉는다. 속이 매스꺼워 게워 내고 싶지만, 위를 쥐어짜는 엄청난 고통으로 게워 내기가 싫다. 퍼레이드 피날레의 시작이다. 7~9회에서는 그 노란색이 초록색으로 바뀐다. 여기까지 왔으면 스스로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이 기나긴 여정의 종지부를 찍을 순간이 왔다. 그런데. 난 이 다음이 있는 줄 몰랐다. 아니 미친 토를 하는데 검은 게 나온다. 이런 건 두돈반 엔진오일 교체할 때나 봤던 거 같은데. 그러다가 또 초록색이 나온다. 아직도 나는 사람이 맞나 의심한다.
사실 이 몸뚱어리는 밑으로도 쏟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쉬이 허락할 수 없었다. 밑으로 쏟기 위해서는 앉아야 하는데 그게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다. 위로 쏟아내면서 온몸에 힘이 빠져 사지가 수축하는 느낌이 들었고, 몸을 펴거나 일으키는 자세, 즉 앉기, 서기 등의 중력에 저항하는 모든 자세는 복통, 근육통, 두통, 어지러움을 심화했다. 중력에 순응해 바닥에 누워 몸을 잔뜩 웅크리기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 괄약근이 한계치에 임박한 것을 직감하고 어쩔 수 없이 변기에 나를 얹는다. 오 주여, 다음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쿠구구구구)
…
“와 많이 나오네”
…
“어? 이제 끝날 때가 됐는데..?”
…
“어……? 잠깐만 뭐야 이거”
…
“잠깐만 이거 설사 맞아? 내 장기가 녹아서 나오는 건가?”
…
물줄기는 점점 강해졌고, 스페이스X의 스타쉽이 무색한 폭발적인 추진력으로 몸이 약간 위로 떴다. 위로 아래로 뺄 수 있는 모든 물을 다 빼고 나니 입술이 바싹 말랐다. 뺐으니 다시 채워야 하는데 의욕도, 의지도 없다. 그저 눕고 싶을 뿐. 그렇게 누웠는데 호흡도 시원치가 않다. 위장이랑 같이 폐도 쪼그라들었는지, 폐활량이 줄어든 느낌이었다. 숨을 쉬는데 뭔가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 간간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내 애플워치도 수면 중 심박수와 호흡수가 높다고 경고를 보내왔다. 대견한 녀석. 일어설 힘도, 앉아 있을 힘도 없어 계속 누워있다 보니 이젠 또 허리가 아프다. 그래서 오른쪽으로 누웠다가, 왼쪽으로 누웠다가, 엎드렸다가 다시 정자세 누우며 자세를 바꿔봤지만 머지않아 다시 허리가 아팠다. 그래서 중간중간 브릿지와 데드버그를 해서 코어를 단련했다. 또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 추워서 경량패딩에 이불을 껴입고 자면 더워서 깨고, 더워서 창문을 열어놓으면 추워서 깨고. 다음 날 샤워하려고 보니 양팔과 배때지, 옆구리가 붉은 반점으로 뒤덮였다. 이틀 만에 3kg가 빠졌다. 서서 밑을 보는데, 사람이 이렇게 평평해도 되나 싶었다. 사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라면 내심 흡족할 수 있다. 하지만 3kg 증량을 목표로 하고 있던 나에게는 피눈물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게 하루 이틀이면 끝날 것을 알았기에 버틸 수 있었지, 말년에 노쇠해서 이게 일상이 된다면, 이승은 지옥이고 지옥은 천국이겠거니 했다. 안락사는 합법화 되어야 한다.